2004-03-20

중동하고 한국은 거리상..

작성자 : 흉노 조회수 : 99 추천수 : 1 다운횟수 : 0
[2004-03-20] 중동하고 한국은 거리상..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중국 역사에서도 수시로 등장하는 돌궐족이란게 투르크족 적 터키인들입니다.
이들이 수시로 중국의 변방을 유린하였으며 고구려와도 연합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아시아 끝끼리 어찌 그리 잘 통하는지...

또 하나... 거리의 문제인데요.
헝가리의 마쟈르 혹은 마갸르 ( 이들은 어쩌면 기원후 700년경부터 사라진 말갈족중 2지파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헝가리의 공식 역사서에도 그들의 조상은 약 2세기동안을 바이칼호등에서 방랑했다고 하더군요... 그 때가 바로 고구려의 쇠약 시기이고 중국의 말갈족에 대한 압박이 강해 질때 였습니다.) 족이나 몽고족들은 한명의 기병이 약 6마리 이상의 말을 몰고 다니면서 수시로 갈아 타고 잠도 말위에서 잡니다. 그래서 몽고군의 진격 속도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빨랐던거지요.
이스탄불에서 몽고 초원까지 2주내지 3주 정도의 시간에 주파했었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가 슈메르(일부 재야 사학자들은 소머리족이라고 우기기도 하지만 ) 와 동일민족이라 보기는 힘들겠지요. 왜냐 하면 슈메르의 출토 유물에서 보이는 얼굴은 분명히 서구적인 얼굴이거든요.

그런데 잠깐... 싸이드로 빠져서 흉노족이야기를 할께요.
흉노족의 특징중에 하나가 바로 이마가 둥글지 않고 뒤로 기울어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고향이 경상도하고도 통영인데 ( 대대로 여그서 살았음 ) 이곳 통영,고성, 마산 진주 지역의 사람들을
자세히 보시면 다른 지역의 한국인들과는 약간 다른 점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첫째 : 미간이 이마에 비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타지역분들은 이마와 미간이 높이가 같은 경우가 많은데 경상도에서도 이지역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둘째 : 이마가 뒤로 기울어 있는, 소위 메뚜기 머리인 경우가 제법 많습니다. 저도 그런데...
역사학자들중에는 이 흉노의 메뚜기머리가 돌로 눌러서 그랬다고 하는데
제가 볼때는 흉노의 지파들이나 속부족들이 흉노 패션을 따라서 하기위해 그랬던 것이 아닌가 하는...

세째 : 대체로 골격이 큽니다.
씨름이 프로화 되었을때 초창기의 장사들은 대체로 이 지역 사람들이었습니다.

네째 : 몽고반점이 타지역보다는 약간 작은 듯 합니다.

자세한 유전적 연구는 제 분야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흉노족이 말뒤에 솥을 걸고 다녔다는 기록이나 신라에서 발굴된 토기중에 말뒤에
솥을 매단 것이 있습니다. 이것또한 의문이고...
신라가 가야 합병후에 폭발적으로 기술이나 국력이 발전한 것도 의문이고...
가야는 어떻게 해서 그 남쪽에 있으면서 신라보다 기술력이 앞섰는지도 의문이고...
가야인들중에는 백인적형태(아리안계)의 유골도 발견됐다고 하는데 이들의 기원도 그렇고...
지형이 척박하던 신라나 가야인들이 유골상 백제나 고구려인들보다 평균 5센티정도 더 크다는 것도 그렇고...
중국에서도 그유명한 의사 화타가 서역인일거라는 추측이 무성하고 ( 중국인들은 아니라고 박박 우기지만 당시의
일반적 중국의술에선 째고 긁어내는 형태의 외과적 치료가 없었다고 합니다. )...

하여간 우리나 극동 아시아의 고대사는 참으로 의문이 많습니다.

하여간 우스개 하나...

고도리에 관한 유래...

고구려와 돌궐이 연합하여 중국을 괴롭히매 중국에선 큰판을 일러
"고돌"이라 하였다 하며
중국의 수와 당이 고구려를 공격하다 실패하여 낙양과 장안으로 서서 돌아간 자가 없다하여
"낙장불입" 이라 하는 말이 생겼으며
이후 신라가 당을 손에 넣고 고구려와 백제를 괴롭혀 이를 원래 수당(手唐)이라 했는데 이후
"쇼당"이란 말로 바뀌었으며
당이 한반도를 다 먹게 되었는데 신라와 말갈때문에 판이 깨진 이후로
"나갈"이란 말이 생겨 후일 나가리라고 하게 되었답니다.

이상 말도 안되는 전설따라 삼만리 였습니다.

아... 그리고 현재의 이라크인들이나 쌤 햄족과 슈메르인들과는 인연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그럼 이만.


--------------------
>작성자 : 로크
>
>
화랑님이 한국어를 읽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마침 저도 요즘엔 고조선과 그 이전의 선사시대에 관한 호기심으로 조금 알아보고 있어서 분에 넘치게 참견했습니다..^^
>
>
>고대 한국인의 조상이 건설한 고조선의 '다물'(1. 최대의 영토를 가졌다는 고조선 왕의 이름/ 2. 되돌려 받다 라는 고대어)에 관한 내용의 책에 보면 '그 크기는 동서 1만리' 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
>이른바, 한국 내의 '한단고기 정사파'의 경우 몽고부터 한반도, 연해주까지의 모든 민족이 사실상 '고조선'이라는 대규모 부족 연합체였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
>국내의 이병도 학파를 위시한 주류 사학자들에게는 외면받고 있지만 요즘들어 젊은 사학자들을 중심으로 한단고기의 내용을 검증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고조선과 그 뒤를 이은 고구려의 유적이 많은 중국의 만주 지방에 직접가서 미개방 고분들을 연구하는 것이지만.. 중국정부가 외국인 사학자, 특히 한국인은 절대 연구를 금지하고 있어서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이미 70년대 ~ 80년대에 중국 자체적으로 고구려 및 고조선 고분들을 모두 발굴했었다고 합니다. 그 연구결과를 절대 외부에는 알려주지 않는 이유도 의심스럽습니다.)
>
>그러나 현존하는 어떤 고대사에서도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고조선이나 그 이전의 선사시대와의 연결을 알려주는 자료는 없고, 국내의 신 사학자들도 이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
>고대 중국식 거리 산법으로 보면 '동서 1만리'는 동서로 4000 KM 라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쳐도 현재의 이라크와 한국의 거리상 몇 마디의 언어가 일치한다고 해도 뭔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군요..^^
>
>혹시 흥미가 있으시다면, 조갑제씨하고 직접 연락을 해보시는 편이 확실할 것 같습니다...^^
>

댓글 없음: